
쁘레아 칸
자야 바르만 7세는 왕위에 올라 1186년 어머니를 위한 사원 따 쁘롬을 만들고, 이어서 아버지를 위한 사원 쁘레아 칸을 건설하였다. 쁘레아 칸은 “신성한 칼”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앙코르 톰의 북쪽에 있다. 신성한 땅 자야스리에 있고, 신성한 호수인 자야타타카의 서쪽에 있으며, 800m*700m, 56.7헥타르의 대형 건축물이다. 1177년 참파의 침공 시, 똘레삽에서 참파를 크게 무찌르고 지금의 쁘레야 칸 지역에서도 처절한 전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피가 물처럼 흘러서 `피의 호수`라고도 불렀던 곳, 참파의 왕이 전사한 곳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1181년 참파를 무찌른 후 기존의 왕궁이 불타 없어져 거처가 없을 때, 임시 왕궁으로 사용하였고, 왕궁을 완성 후 이곳을 대대적으로 증축하여 그의 부친에게 헌정한 사원으로, 교수가 천 명이나 되는, 승려 양성소로 사용하였다 한다. 이후 앙코르 톰에서 삐마이 등, 외부로 17개의 왕도를 건설하는데, 쁘레 아 칸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곳에는 자야 바르만 2세 때, 신을 대신하여 백성 을 다스리라고, 신에게 받은 신성한 칼을 보관했다 하는데, 중앙 성소에는 자신의 아버지를 형상화 한 로케스바라(세상의 주인, 관음보살)를 두었으나, 16세기 경 부처님의 사리를 보관하는 스투파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중앙 성소를 중심으로, 서쪽에는 비슈누를, 북쪽에는 시바를, 남쪽은 왕과 왕비를, 동쪽은 시바, 비슈누, 브라마 등 삼신을 봉헌하였다. 중앙 성소의 주변 벽에는 1,500톤의 청동으로 판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서문에서 중앙 성소로 가면 출입문이 점점 낮아지는데, 주로 신하들이 출입하는 곳으로, 고개를 숙여 신을 경배하라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