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반테 스라이
반테 스라이는 작고 아담하지만 매우 아름다운 사원으로, ‘여인들의 성’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른 사원과는 다르게 자야 바르만 5세의 스승인, 야즈나바라하가 건설한 사원으로, 조각기법이 매우 독특하고 정교하여 크메르 예술의 보석으로 평가한다. 왕의 권위와는 상관없이 만들다보니, 여느 사원과는 다르게 부지가 아주 작고 건축물도 상당이 작다. 신전 출입문의 높이가 130cm에 불과 하며 신전 내부도 2m를 넘지 않는다. 비슈누, 인드라, 시바 등 다양한 신들과 라마야나의 일부분과 젖의 바다 젖기, 시바와 파르바티의 사랑 등 다양한 신화가 새겨져있으며, 프랑스는 1914년에 처음 발견하였다고 발표한다.(그러나 이미 크메르인들은 신전 주위에 살고 있었다.) 1923년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라는 23살의 청년은 4개의 여신상을 도적질 하였다. 그는 유물을 반출하다 잡혀 6개월간의 옥살이를 하였으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유적의 밀반출이 심하다 보니 프랑스는 1929년 반테 스라이를 재건하기로 결정하여, 1931~36년까지 모든 돌을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형태로 복원(Anastylosis 공법)하였고, 앙드레 말로는 그로부터 29년후 프랑스의 문화성 장관이 되었다. 복원 후 그 단단하던 바닥이 기울기 시작하여 보존 및 유물의 도난 방지를 위해 고푸라로 부터 2~3미터 거리에 줄을 쳐 들어갈 수 없게 해 두었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반테 스라이의 부조를 감상하기에는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bottom of page